공연·전시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조엘 폼므라의 연극 '이야기와 전설'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

달콤은아 2024. 11. 8. 21:47

인간은 오래전부터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며 세상을 인간 중심적으로 이해해왔다. 프랑스 연출가 조엘 폼므라의 연극 '이야기와 전설'은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미래 사회를 그리며 이 같은 관점을 반영한다. 그 의미와 메시지를 알아보자.

 

 

인간 중심적 시각

인간은 세상을 자신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물이나 자연현상에 인간적 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에서도 이 같은 시각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햇님이 인사한다" 같은 문구는 사물을 마치 생명체처럼 묘사한다. 이런 표현들은 인간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을 나타낸다. 나아가 이러한 시각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의인법의 의미

의인법은 사물에 인간적 속성을 부여하는 문학적 기법으로, 세상을 보다 친숙하게 만들기 위한 표현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사물과 환경에 특별한 감정이나 의미를 투영한다. 이 방식은 인간이 비인간적 존재와 소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의인법은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닌, 우리가 사물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방식이다. 조엘 폼므라의 연극에서도 이러한 표현법이 나타난다. 연극 속에서 인간이 로봇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의인법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조엘 폼므라 작품

조엘 폼므라는 '이야기와 전설'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 속에 자리 잡은 미래를 묘사한다. 이 연극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로봇이 청소년의 학습과 성장을 돕는 과정이 주요 주제로 다뤄진다. 폼므라는 인간과 닮은 로봇이 청소년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한다. 작품은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이를 통해 폼므라는 인간 본성과 기술적 존재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관객들은 연극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로봇과 성장

연극 속 청소년들은 로봇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로봇들은 이들에게 단순한 기계가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청소년들은 로봇과 감정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을 탐구한다. 동시에 그들은 로봇이 설정된 대로만 반응하는 인공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 같은 인식은 청소년들이 로봇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중적 관계는 그들이 성숙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은 로봇과의 교류가 인간 성장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교류의 한계

연극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그들만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로봇은 설정에 따라 행동할 뿐,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오랜 시간 로봇 로비와 지내던 아이가 작별하며 남기는 "저게 다 가짜라는 걸요"라는 말은 이러한 한계를 상징한다. 로비의 내면에는 인간처럼 감정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며, 프로그래밍된 행동만이 나타날 뿐이다. 이는 인간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로봇도 진정한 의미의 교류는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작품은 이 같은 한계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로봇의 도구적 운명은 그들이 아무리 인간처럼 보여도 변하지 않는 본질로 남는다.

 

존재 방식 다양성

연극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로봇이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관계를 제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로봇과는 다른 형태의 유대를 형성한다. 로봇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독특한 관계가 가능해진다. 그들과의 교류는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감정적 유대를 제공한다. 이 같은 교류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도 의미 있는 관계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 간의 소통 가능성은 관계의 새로운 방식을 탐색하게 만든다. 청소년들은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며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시야를 넓혀간다.

 

로봇과 소통

작품 속에서 로봇은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소통의 대상이 된다. 아이돌 로봇 에디는 수많은 팬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며, 팬들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팬레터에 답신하고, 전화에도 응답하는 에디는 팬들에게 각별한 존재로 자리 잡는다. 특히 투병 중인 청소년 기욤은 에디를 통해 위로를 받으며, 그의 존재로 삶의 의미를 다시 찾는다. 에디와의 만남은 기욤에게 큰 용기를 주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작품은 로봇과의 감정적 유대가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보여준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계기가 된다.

 

미니멀 미장센

'이야기와 전설'은 무대 장치에서 미니멀리즘을 선택해 연극의 메시지를 한층 부각시킨다. 소파와 테이블로 꾸며진 간결한 무대는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이야기의 전환마다 이어지는 암전은 세련된 연출로, 극의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만든다. 무대 한편에 조용히 앉아 있는 로봇의 모습은 인간과 다른 인공지능의 존재감을 은은히 전달한다. 이 같은 단순한 무대는 등장인물과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폼므라는 이런 미니멀한 연출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강화한다. 극의 철학적 깊이를 더욱 강조하는 미장센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